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계 팔라우인 (문단 편집) == [[역사]] == 일본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팔라우가 포함된 [[남양제도]]를 점령했으며 남양제도는 국제연맹에 의해 공식적으로 일본의 위임통치령이 된다. 점령 후 팔라우에는 [[남양청]]이 세워져 팔라우는 남양제도의 수도급 위치가 되었는데 이에 따라 다수의 [[일본인]]이 팔라우로 이민을 오게 된다. 1935년, "일본인" 인구는 6,098명으로 원주민 인구 6,097명과 거의 동수였으며 1938년에는 일본인 인구가 15,669명으로 원주민 인구 6,377명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이들 일본인 중 약 7,500명이 [[오키나와]] 출신이었다. 일본인이 대거 유입됨에 따라 원주민과의 통혼도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이 경우 일본인 남성 - 원주민 여성의 결혼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이 때 혼혈아는 아버지의 호적에 등록될 경우 법적으로 일본인으로 대우받아 일본인과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이 패전하자, [[미국]]은 팔라우 내의 일본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이 시기에 유입된 일본인을 일본으로 강제 추방하게 된다. 그 결과, 이전에 팔라우인과 결혼한 일본인들도 강제 추방되었는데, 그들의 혼혈 자식 역시 법적으로 일본인 취급이었기에 강제 추방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모계 사회였던 팔라우 특성상 어머니가 팔라우인이므로 혼혈아는 팔라우인이라는 논리를 미국에 내세웠고, 미국은 혼혈아 중 장남만을 일본인으로 취급해 일본으로 추방한다. 이후 일본으로 추방된 일본계 팔라우인들은 몇 년간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미국의 허가를 받아 팔라우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순수 일본인은 팔라우로 귀국할 수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